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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엄마라고 꼭 친하지는 않아요

리치경 2020. 7. 6. 11:25

 

 

나는 우리 엄마와 친하지 않다.

 

그렇다고

우리 엄마가 싫은 건 아니다.

 

 

 

 

우리 엄마는

곱게 자라

아무 일도 안 해보시다가

우리 아버지를 중매로 만나

시집오셨다.

 

시집온 날이

우리 엄마 인생 2막이 열린

누구나 예상한

고생길의 시작이 됐다.

 

 

 

 

엄마에게서 어렸을 때부터

계속해서 들어온 말은

 시댁 식구 뒷담화였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난 어린 나이부터 다양한

뒷담화 스킬을

구사할 수 있게 됐다.

 

 

 

 

우리 엄마가 시집와서

본 충격은

마치 공주가 성에서만 살다가

성 밖을 처음 나가 보게 된

충격이라고 할까...?

 

아주 비슷하다.

 

 

 

 

 엄마의 결혼 전에 삶과

시집온 후의 삶에

너무나 큰 차이로 인해

우리 엄마는

현실 삶에 적응을 못하셨다.

 

내가 결혼을 하고

나이가 들어

그동안의 엄마의 삶을

다시 들여다보니,

 베푼다는 것에 대한 공부가

필요한 사람이다.

 

  당신이 먼저 베풀고

상대가 알아주기를 바라면

안 되는 삶이었다.

 

당신이 베풀고

잊어버리고 있으면

때가 되면

다 알아주는 삶이었다.

 

 

 

 

 당장은 상대가 알아주지 않아

나는 희생만 하며

산 것만 같아도,

 

어느 날 때가 되면

당신을 존경하게 된다는 걸 

성급하게 

못 기다리신 것 같다.

 

엄마는

결혼 전 부유하고

주변에서도 받기만 하던

삶이었다 보니

물질을 나누는 것에 능하셨다.

 

그러나

당신이 조금만 주어도

공치사를 바라셨다.

 

그래서

자주 이런 말을 하셨다.

 

" 누가 날 챙겨주길 바라고

보살펴주고 의지하면

나는 안 되는 사람이야"

 

 

 

 

난 당신 인생의 답을 알고

말씀하신 줄 알았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삶이

부러워하신 말이었다.

 

 난 엄마의 인생을 보며

인생의 기다림이란 무엇인지

생각했다.

 

우리 엄마는

항상 갑의 자리,

윗사람의 위치였다.

 

진정한 베풂은

물질이 아닌

말로써 상대를 돕는 것만이

진정 돕는 것이었다.

 

당신이 해준 말로써

상대의 정신적 성장을 돕고

상대는 좋아지고

그럼 내가 한 고생에

보람을 찾게 해 줄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 엄마는

주변사람들에게

물질을 주며

가르치려고만 들었다.

 

우리 엄마는

그게 도와주는 거라고,

공덕을 쌓는 거라고,

착하게 사는 삶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우리엄마가 그렇게 도운사람들은

받는걸

당연히 생각했고,

더 주길 바랐고,

우리 엄마를 시기, 질투했다.

 

그렇게

난 진정 사람을 돕는다는 것은

물질이 아닌

도움 되는 말 한마디라는 걸

엄마의 힘든 삶을 보며

슬프게도

잘 알게 됐다.

 

 

 

난 우리 엄마와 친하지 않다.

가까워지고

친하고 싶었다.

 

그러나

모든 방법들이 실패였다.

 

그러나

포기하진 않는다.

 

우리 엄마를 보며

이 세상에는

자식보다도 내가 더 중요하다

생각하며

사는 사람도 있다는 걸

난 알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