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군인가족이었고
남편은 군인이었다.
1992년~2022년 동안
내가 군인가족으로 살았던
이야기를 적어본다.
제1의 인생인
33년의 군생활을 마무리하고
남편은 전역했고
나는 군인가족으로 30년을 살았다.
우리는 인생 이모작 중이다.
아직도 전국곳곳에
나의 젊은 시절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
군인가족을 위하여
나의 보고서를 만들어본다.
난 군인이 아니었지만
결혼으로
군인가족이 되었다.
군인가족이 될 줄 알았다면
계급정도는
알아둘걸 그랬다.
군인가족은
군인은 아닌 민간인이지만
가족이 군인이라는
직업으로 인해
낯선 환경과 낯선 사람들을
접해야 하는 직업이다.
이사 간 곳에서
현지인과 친해지긴 어렵다.
군인가족은
마을주민이라
생각해주지 않는다.
철새처럼 때가 되면
또 이사를 떠나기 때문이다.
그럼
같은 군인가족들과
친해지면 된다.
그러나
친해질 때쯤 이사로 헤어진다.
군인가족은
고독과 외로움을
공부로 삼아야 한다.
그러나
주말부부로 떨어져 산다면
가족들 모두 같이
고생해야 하는 부분이
상쇄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순진하고 어설픈 모습으로
군인가족이 되어
처음 발을 디딘곳은
홍천이었다.
강원도 홍천.
나의 흑역사 생성지다.
군인은 결혼하면
부대에서 아파트나 관사가 나온다.
그러나
집이 모자라거나
원활하지 못하면
따로 집을 구해야만 한다.
우리는 부대 근처에 월세로 살았다.
내 돈으로 내가 구한
월셋집.
도시에서만 살았던 나는
외국처럼
밤에는 걸어 다닐 수 없거나,
산책할 수도 없는
홍천이
너무나 무서울 만큼
낯설었다.
그러나
군인가족이라 불러주는 호칭에
나의 젊음은 설레었다.
군인가족이란 단어는
새로운 신참도
'우리'로 묶어주는
마법의 단어로 느껴졌다.
군인가족.
가족이라니..
너무 정감 가고
마음에 드는 호칭이었다.
그렇게
'군인가족'이란 배지를 달고
난 첫 군가족 모임에 나가
남편계급인 소위를 달고
소령사모님께 질문을 했다.
"사모님, "
"저희 담달에 소령으로 진급해요."
"소령 달면 월급 많이 오르나요?"
주위의 시선을 동시에
한 몸에 받으며
난 설레며
대답을 기다렸다.
2화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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