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군인가족이었고
남편은 군인이었다.
1992년~2022년 동안
내가 군인가족으로 살았던
이야기를 적어본다.
부산 수영 군인아파트로 이사했다.
홍천에서 그토록 살고 싶었던
군인 아파트였다.
수영군인아파트다.
지금은
허물고 높게 올려 다시 지었다.
수영 군인아파트는
주변에 팔도시장을 끼고 있었다.
남편 부대에 선 거리가 좀 있는
4층 8개 동으로 위치했다.
우리는 1층이었고
앞집엔 원사
위층으로 대위 2분,
상사, 중위
소령, 원사가 살고 계셨다.
이사한 지 1주일 못됐을 때쯤
2층에 사시는 소령사모님이
문을 두드렸다.
"반가워요, 이삿짐 다 정리됐어요?"
"아.. 네... 근데 누구세요?"
내게 집들이를 해야 한다며
남편부대일과
아무 상관없고
집들이는 의무라고 했다.
국민 3대 의무는 들어봤지만
집들이 의무는...
날 몹시 식겁
겁나게 했다.
가뜩이나 겁이 많은 난
하기 싫다고
대답하고 싶었다.
그러나 찍히면
아파트에서 쫓겨날까 봐
엉뚱한 두려움에
알겠다고 했다.
그러나
날 더 겁먹게 하고
걱정하게 만든 건 다른 거였다.
그건 바로
1년에 두 번씩
아파트에 사는 가족들이
모두 나와
주변정화 청소를 하고,
1달에 한번
집에서 양동이로 물을 받아
맨 위 4층에서부터
차례대로 물을 뿌려
물을 내려
통로 물청소를 한다는 거였다.
나는 두려웠다.
북한으로 이사 온 줄 알았다.
태어나 처음 겪는 일이 분명했다.
참석 안 하면 눈밖에 나겠지..
청소하는데 나만 안 나왔다고
부대에서 찾아와
날 겁박하겠지..
그래도 계속해서 반항하고
참석 안 하면
군인아파트에서 쫓겨나겠지..
온갖 상상이 날 괴롭혔다.
나는 심한 부담감과 두려움
그리고
위층부터 도대체, 왜,
과연, 어떻게
물을 뿌려 청소하는 걸까..
마구마구 막막했다.
이 궁금증을
앞집분께 물어보지도
알려하지도 않았다.
요주인물로 찍힐까 봐.
그날이 다가왔다.
알 수 없는 통로 물청소를
시작한 것이다.
시키는 대로 착하게
물을 받아
계단에 부었다.
미리 사놓은 새 빗자루로
마구 계단을 비벼댔다.
다들 그렇게 하시니
난 당연히 열심히 했다.
그리고선 약속한 듯
아파트우편함 앞에 다 모였다.
나도 조신히 옆에 섰다.
사모님들의 수다가 시작됐다.
서로 이런저런 얘기를 하시다
동시에
나를 위아래로 쳐다보셨다.
검문검색을 당한 것이다.
무서워서 자애롭게
난 미소를 지었다.
" 집 정리는 다 됐어요?"
"집들이 언제 할래요?"
모든 것이 낯설다고
느끼기도 전에
사모님들의 전원 참석으로
나는 집들이를 했다.
음식을 잘할 줄 몰라
중국집에서 주문을 해드렸다.
그때 당시
짜장면이 3천 원
짬뽕이 3.5백 원이었다.
내가 생각한 주문 메뉴와 달리
대다수의 사모님들이
잡채밥을 주문하셨다.
뭐.. 그래도
맛있게 드셨다니
다행이었지만
빡빡한 생활비가 걱정이었다.
이사 들어오며
돈 들여
안방에만 깔았던 장판값이
괜한 짓을 한 것 같았다.
잡채밥을 다 드신 후
집들이로 우리 집에 오신
사모님들은
내게 세상물정을
알려주려던 걸까..
아니면
너무 귀하게 자란 걸로
내가 포장돼 보였던 걸까..;;
사모님들은 아주 힘들고
어렵고
심한 고생을 하며 살았다며
나를 앞에 두고
서로 불행배틀을 하셨다.
혼란스러웠다.
나는 비가 새고 녹물 나오는
관사에 살았었다.
내가 뱀, 쥐, 바퀴가 나오며,
주저앉은 싱크대에 살았었다.
우리 때는 욕조 위에 얹어 쓰는
세탁기 물로 인해
화장실에서 여러 번 자빠졌었다.
박봉에 잦은 이사,
아이학교 전학의 힘듦,
낡고 작고 좁고 불편하고의 집..
그만.. 그만해...~~!!!
난 소리치지 못했다.
잘 귀담아들을 뿐..;;
내 친구들은 내게 말한다.
"집 빌려 주잖아, "
PX도 이용할 수 있고, "
"심지어 나중에 연금까지 주고.."
"모두 다 좋을 순 없잖아?"
다 맞는 말이다.
좋은 점만 생각하며
이겨내는 사람도 있다.
힘들고 열악한 환경은
개선시키든
적응하든
어떻게 하든 살게는 된다.
부산에서의 생활은
아파트지만
부엌 쪽은 난방이 안 깔려
신발을 신고 내려가는 구조였다.
이사한 지 두 달 만에
부대에서
바닥난방공사를 한다며
한쪽 방에
모든 가구, 짐을 몰아넣고
바닥을 뜯어 공사를 하기 시작했다.
공사는 며칠 만에 완료됐다.
그러나
너무 많이 드는 기름값에
연탄이 더 나았다.
따뜻한 남쪽 부산인데도
겨울에는 추위와 힘든 씨름을 했다.
그러나
난방비의 부담조차
거뜬히 넘는
노련한 사모님들이 있었다.
나만 노련이 아닌 미련했다.
바닥난방공사를 할 때
보일러 설치 위치와
바닥에 깔
난방파이프 간격까지
커피와 빵을 대접하며 참견하여
알차게
공사를 받으셨던 거다.
우리 집만
빵과 커피대접이 없어서였나..?
공사하기 편한 위주로
보일러를
앞베란다에 설치해 버렸다.
바닥도 듬성듬성 따뜻했다.
또, 벌써, 어느덧
부대 전출로 인해
이사를 해야 했다.
나는 2번째 하는 이사만에
일일이 짐을 다 싸야 하는
일반이사 말고
비싸지만
수고로움을 대신해 주는
포장이사를 하고 싶었다.
그러나
어느덧 나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매일 조금씩 짐을 쌌다.
돈의 위력을 생각하며..
4화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