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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가족

군인가족17화 나는 군인가족이었고 남편은 군인이었다. 1992년~2022년동안 내가 군인가족으로 살았던 이야기를 적어본다. 남태령으로 이사를 했다. 군가족 이사로는 마지막이다. 남태령부대는 사당옆에 위치한 관악구지만 간단히 횡단보도를 건너면 서초구였다. 살게 된 관사는 최고 좋은 위치에 있었다. 산 중턱쯤에 위치해서인지 공기는 더 상쾌했다. 요즘은 보기 드문 예쁜 청개구리가 사는 시골분위기였다. 여담으로 CJ오쇼핑 사옥이 부대 맞은편에 있다. 이곳이 불이 난적이 있는데 그 시각이 새벽 4시. 부대에서 당직근무자가 우연히 불난걸 먼저 발견하고 119로 신고를 해 다행히 쉽게 진화 돼서 서로 돈돈한 관계를 됐다. 그런 혜택으로 cj오쇼핑의 초청을 받아 사령관님과 군가족들이 쇼핑사옥을 방문했던 추억이 감사하게도 생겼다. 남.. 더보기
군인가족14화 나는 군인가족이었고 남편은 군인이었다. 1992년~2022년동안 내가 군인가족으로 살았던 이야기를 적어본다. 이제 14번쯤 이사하면 드는 생각이 있다. 이젠 정착을 해야 하나..?? 아이들 학교 때문이다. 중학교부터는 학교마다 교과서도 조금 다르고 진도도 차이 나기에 전학은 학교성적에 불리하다. 전학으로 인한 교복구입도 부담이다. 그래서 김포에서 수원으로 안 가고 학교 있는 근처로 집을 얻어 남편과 떨어져 지냈다. 남편 입장에서도 혼자 단출하게 이사하는 게 편하니 남편도 따로 살길 원했다. 그렇게 우리 부부는 3~4개월에 한 번 보며 살았다. 이사를 안 다니고 아이들이 전학을 안 하고 사니 아이들이나 나나 편했다. 난 가끔 모임만 참석하면 됐다. 그런데 사는 게 재미가 없었다. 뭐.., 언제는 재미있었나.. 더보기
군인가족13화 나는 군인가족이었고 남편은 군인이었다. 1992년~2022년동안 내가 군인가족으로 살았던 이야기를 적어본다. 이렇게 또 이사를 했다. 경기도 김포시 사우동으로. 이사는 내게 없어서 안 될 존재다. 언젠가 남편이 전역하면 이사를 멈춰야 할 텐데 그땐 가만히 살 수 있을까 싶다. 그만큼 이사를 하며 사는 삶은 너무나 나와 잘 맞았다. 이사가 잘 맞는다는 건 방랑끼, 역마살이 난리 나서가 아니다. 전생이 김삿갓이었을 수도 있겠다. 생각해 보면 나는 제복 입은 사람을 좋아한다. 경비원, 구급대원 복장도 좋아한다. 제복을 이렇게나 좋아하다 보니 그에 따라오는 이사문제도 운명적으로 받아들이게 된 거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내가 제복을 입을걸 그랬다. 우리가 이사 간 김포 사우동에 위치한 아파트는 아파트를 몇 채 부대.. 더보기
군인가족12화 나는 군인가족이었고 남편은 군인이었다. 1992년~2022년동안 내가 군인가족으로 살았던 이야기를 적어본다. 또 그렇게 포천 부대안 생활도 끝났다. 부대 안에서 살아보는 게 이젠 마지막이 아닐까 싶었다. 군가족 복지는 PX이용다음으로 큰 혜택이 군인아파트 지원이다. 군인아파트는 전과 다르게 시설공병에서 직접 집을 짓는 것보다 일반아파트를 국방부가 구입해 대여해 주는 추세다. 그러다 보니 기존 부대안 관사는 너무 낡거나, 거주할 분이 없을 경우, 그냥 유지보수하는 정도로만 고쳐 사무실이나 창고로 이용한다. 우린 포천에서 송내로 이사했다. 부천과 경계선에 있는 인천 남동구 군인아파트였다. 부대와 바로 옆에 위치한 군인 아파트는 아무것도 없는 외진 곳에 있었지만 뭐.. 외진 곳..., 우리에겐 당연하고 익숙하.. 더보기
군인가족9화 나는 군인가족이었고 남편은 군인이었다. 1992년~2022년동안 내가 군인가족으로 살았던 이야기를 적어본다. 강원도 원주에서 대전으로 이사했다. 위치는 대전 유성구 자운대. 이 정도쯤 이사하면 슬슬 걱정되는 것이 있다. 아이 학교 전학이다. 전학은 군인가족 공통 모두의 걱정이다. 나라의 통일보다 심각한 사안이다. 그래서 한 곳에 최대 오래 근무하며 최소의 이사를 하길 원한다. 한 곳에 오래 근무하며 자녀의 전학을 최소화하는 군인가족도 있다. 모두의 부러움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집은 의도치 않게 철저히 반대의 길을 걸었다. 정말 통탄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이사, 전학은 아주 많이 열악함은 최대치로 북한처럼, 진급은 나무늘보처럼 느리게, 인프라는 제로인 곳으로.. 지금도 우리 가족들은 목가적인 풍경을 .. 더보기
군인가족8화 나는 군인가족이었고 남편은 군인이었다. 1992년~2022년동안 내가 군인가족으로 살았던 이야기를 적어본다. 강원도 고성에서 이사 간 곳은 또 강원도였다. 강원도 원주. 우린 통일아파트에 들어갔다. 성인이 된 우리 아이들은 지금도 말한다. 원주 살 때가 가장 재밌고 즐거웠고 그래서 이사 안 가고 계속 오래 있고 싶었다고. "왜 그때 말하지 않았니?" "말하면 집에서 쫓겨날까 봐 무서워서 말을 못 했어요.." "아.., 미안하다ㅜ" 그 당시 난 모든 것이 예민했다. 모든 것을 잘해야만 한다는 생각이었다. 잘하는 방법도 모르면서 말이다. 원주는 내가 모임의 처음 총무를 맡았던 곳이기도 하다. 모임을 할 마땅한 식당을 찾느라 원주곳곳을 누볐던 기억이 있다. 많은 군인가족들은 노력하며 원한다. 낯선 곳에서도 잘.. 더보기
군인가족7화 나는 군인가족이었고 남편은 군인이었다. 1992년~2022년동안 내가 군인가족으로 살았던 이야기를 적어본다. 1년 살았던 전라도 장성. 떠나기 싫었다. 남편이 또 바빠질 거란 예감이 들어서였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조용히 이삿짐을 싸는 것밖에.. 남편은 고성으로 이사 가도 그렇게 바쁘지 않다고 말했다. 난 믿지 않았다. 내 예감은 정확, 예리했다. 내 촉이 현명해진 것이 아닌가도 조심스레 넘겨봤다. 이사는 이제 내게 스트레스 없는 연례행사 같은 거다. 조금이라도 돈을 아끼고자 비씨기만 한 포장이사는 거들떠도 안 봤다. 그러나 지극히 대단히 스스로 고생을 찾은 어리석음이 분명했다. 지금은 포장이사와 일반이사가 그렇게 가격차이가 나지 않는다. 일반이사를 고집했던 이유는 역시 돈 때.. 더보기
군인가족5화 나는 군인가족이었고 남편은 군인이었다. 1992년~2022년 동안 내가 군인가족으로 살았던 이야기를 적어본다. 보통 부대를 옮기게 되면 전출과 이사할 시간들을 준다. 부대마다 주는 시간은 조금씩 다르지만 남편은 이사 가는 날까지 바빴다. 일부러 바쁜 척한 것이 아닌지 조심히 넘겨짚었다. 그러나 싸우진 않았다. 서로 바빠서..;; 이삿짐을 싸고 이사하기까지 혼자 아이를 데리고 하려니 나는 그동안 편히 너무 곱게만 살았던 걸까 생각했다. 이렇게 나를 항상 강하게 만드는 남편이 밉지는 않았다. 남편은 나라 편이니까;; 이사를 하면 할수록 남편은 점점 더더욱 최강의 바쁜 부대를 찾아들어간 듯했다. 그래서 난 시내에 있는 민간 아파트를 대출을 받아 전세로 들어갔다. 우리에게 배정된 속초관사는 너무 외진 곳에 있어.. 더보기
군인가족4화 나는 군인가족이었고 남편은 군인이었다. 1992년~2022년 동안 내가 군인가족으로 살았던 이야기를 적어본다. 부산에서의 생활은 항상 혼자 지냈다..로 요약된다. 친한 사모님도 없었고 남편도 365일 부대에 나갔다. 수영구 군인아파트는 연탄에서 기름보일러로 바꿔준다며 사람이 살고 있는 채로 공사가 진행됐다. 어수선했다. 아이와 나가있을 곳을 찾아 헤맸다. 난 이렇게 남편만 기다리며 살려고 결혼을 한 건가..?? 사기결혼이 아닌가 조심히 의심했다. 남편과 결혼했으나 혼자 사는 생활.. 아이는 남편과 같이 낳았는데 혼자 키우는 생활.. 남편과 아이와 같이 살고 있으나 혼자 사는 기분이 드는 생활.. 나는 생산성 있게 알차게 보람되게 살지 못했다. 나는 피폐해져 갔다. 누가 밥이라도 해줬음 싶었다. 혼자 밥 .. 더보기
군인가족3화 나는 군인가족이었고 남편은 군인이었다. 1992년~2022년동안 내가 군인가족으로 살았던 이야기를 적어본다. 부산 수영 군인아파트로 이사했다. 홍천에서 그토록 살고 싶었던 군인 아파트였다. 수영 군인아파트는 주변에 팔도시장을 끼고 있었다. 남편 부대에 선 거리가 좀 있는 4층 8개 동으로 위치했다. 우리는 1층이었고 앞집엔 원사 위층으로 대위 2분, 상사, 중위 소령, 원사가 살고 계셨다. 이사한 지 1주일 못됐을 때쯤 2층에 사시는 소령사모님이 문을 두드렸다. "반가워요, 이삿짐 다 정리됐어요?" "아.. 네... 근데 누구세요?" 내게 집들이를 해야 한다며 남편부대일과 아무 상관없고 집들이는 의무라고 했다. 국민 3대 의무는 들어봤지만 집들이 의무는... 날 몹시 식겁 겁나게 했다. 가뜩이나 겁이 많.. 더보기
군인가족2화 나는 군인가족이었고 남편은 군인이었다. 1992년~2022년 동안 내가 군인가족으로 살았던 이야기를 적어본다. 홍천생활은 작고 허름한 집에서도 잘 사는 법을 알게 해 주었다. 난 결혼할 때 받은 선물과 예쁜 그릇들을 마구 펼쳐놓았다. 집을 어지러 놓으면 허름한 집이 가려졌기 때문이다. 내가 사는 집의 1㎞ 쯤에 군인아파트가 있었다. 그 아파트에 살고 계신 사모님이 차 한잔 마시자고 초대를 했다. 그렇게 살아보고 싶었던 군인아파트를 가보게 됐다. 4층 1동짜리 초라한 외관과 달리 아파트 내부는 필요한 것들로만 알차게 구성시킨 잘 정리된 모습이었다. 좁은 공간이지만 없는 게 없이 빠짐없이 다 있는 놀라운 곳이었다. 살림고수가 분명했다. 나도 그렇게 살고 싶었다. 작고 좁고 허름한 군인아파트엔 다른 사모님들이.. 더보기
군인가족1화 나는 군인가족이었고 남편은 군인이었다. 1992년~2022년동안 내가 군인가족으로 살았던 이야기를 적어본다. 제1의 인생인 33년의 군생활을 마무리하고 남편은 전역했고 나는 군인가족으로 30년을 살았다. 우리는 인생 이모작 중이다. 아직도 전국곳곳에 나의 젊은 시절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 군인가족을 위하여 나의 보고서를 만들어본다. 난 군인이 아니었지만 결혼으로 군인가족이 되었다. 군인가족이 될 줄 알았다면 계급정도는 알아둘걸 그랬다. 그럼 내 인생 최초 흑역사는 좀 늦게 만들어졌을 텐데 말이다. 순진하고 어설픈 모습으로 군인가족이 되어 처음 발을 디딘곳은 홍천이었다. 강원도 홍천. 나의 흑역사 생성지다. 군인은 결혼하면 부대에서 아파트나 관사가 나온다. 그러나 집이 모자라거나 원활하지 못하면 따로 집..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