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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가족7화

 

 

나는 군인가족이었고

남편은 군인이었다.

 

1992년~2022년동안

내가 군인가족으로 살았던

이야기를 적어본다.

 

 

1년 살았던 전라도 장성.

 

떠나기 싫었다.

 

남편이 또

바빠질 거란 예감이 들어서였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조용히 이삿짐을 싸는 것밖에..

 

남편은 고성으로

이사 가도

그렇게 바쁘지 않다고 말했다.

 

 난 믿지 않았다.

 

내 예감은 정확, 예리했다.

 

내 촉이

현명해진 것이 아닌가도

조심스레 넘겨봤다.

 

 

이사는 이제 내게

스트레스 없는

연례행사 같은 거다.

 

조금이라도 돈을 아끼고자

비씨기만 한 포장이사는

거들떠도 안 봤다.

 

그러나

지극히 대단히

스스로 고생을 찾은

어리석음이 분명했다.

 

지금은

포장이사와 일반이사가

그렇게

가격차이가 나지 않는다.

 

일반이사를 고집했던 이유는

역시 돈 때문이었다.

 

그러나 직접 짐을 싸는 것이

조금의 스트레스 해소도 됐다.

 

직접 짐을 싸며

묵은 짐을 정리도 하고

직접 짐을 풀며

최적에 장소에

최정예 물건을 갖춰 정리하는

힐링을 주기 때문이었다.

 

 

고성 부대관사는

바로 뒤에 운봉산이 있었다.

 

차분한 기운과

당연한 맑은 공기를 자랑했다.

 

관사 앞에 작은 텃밭을 만들어

고추, 상추, 토마토도 심어

농부놀이도 했다.

 

강아지를 낳은 집이 있어

'임진이' 라 이름도 지어주었다.

 

 

부대 앞에 버스종점이 있었지만

 이용하는 걸 본 적은 없었다.

 

면허가 없는 군인가족들은

차를 얻어 타고 다니며

나의 제천에서의 모습을

그대로 구현하는 것 같았다.

 

 

관사 주변엔 학원도 없고

학교도 멀었다.

 

그러나

대다수 군인가족은 

더 먼 속초까지 학교를 보냈다.

 

학교 끝나고 보낼

학원 때문이었다.

 

나는 학교가 멀어

많이 고생했던 기억이 있어 

고성에서 속초까지

통학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창창한 미래를 위해

학원을 택해야 하는 힘듬이냐,

 

아이의 편안한 안위의 통학이냐,

 

선택의 갈등이 있었다.

 

고성으로 선택했다.

 

걸어가기엔 무리고

차로 15분 거리에 있는 학교였다.

 

전교생이 32명이었다.

 

 

두려웠다.

 

전교생이 적어서가 아니라,

제대로 교육을 안 시킬까 봐도

아니었다.

 

다들 속초까지 통학을 시키니

군인가족 사이에서

우리 아이만

왕따가 되는 건가 싶어서였다.

 

 

괜한 기우였다.

 

바로 얼마지 않아

새로 이사 온 군인가족들이

우리와 같은 학교에 다녔다.

 

학교는 군인가족들로 인해

학생수가 증가했고

학생수에 맞게

선생님도 늘어나고

무료 우유혜택도 받게 됐다.

 

 

문제는 등하교 차편이었다.

 

면허가 없거나 동생이 어려

등하교를 도울 수 없는

군인가족을 위해

차를 같이 타고 다니게 됐다.

 

우리 아이는 엄마와 단출하게

등하교를 하다가

이제 좀 다르게 좁게 타고

같이 등교하는 친구가

시간보다 늦으면

기다려야 하는 상황을 짜증을 냈다.

 

내가 어떤 말로

아이를 위로했는지, 안 했는지

기억나진 않는다.

 

짜증 내는 우리 아이를 보며

나의 어린 시절을 많이 떠올렸다.

 

"나도 짜증 많이 냈는데..;; "

 

벌써 옛날이야기가 되었다.

 

 

항상 바쁘다고 주장하던

남편은 관사가

부대 바로 옆에 있으니

부대밥은 맛이 없다는 핑계로

항상 집에 와 밥을 먹었다.

 

호사를 누린 거다.

 

 

호사를 누리는 남편을

미워한 것이

죄가 된 걸까..?

 

자연재해로 인해

다리가 끊겨

시내로 나갈 길이 막혀버렸다.

 

 좌천된 기분이었다.

하늘에서 내쳐진 기분이었다.

 

강제적 웰빙 자연인생활을 했다.

 

수도, 전기가 끊겨

물이 안 나왔다.

 

이참에 떡진 머리도

열심히 해봤다.

 

촛불의 흐릿한 빛으로 인해

내 얼굴이 미인으로 보였다.

 

 

그러나

이 난민 같은 경험들은

나의 생각을 바꿔놓았다.

 

코와 폐를 자극하는 매캐한 매연,

 

길치로 만드는 복잡한 교통,

 

정신을 말끔히 빼주는 소음,

 

기침을 부르는 탁한 공기,

 

 귓방망이를 때리는 빌딩숲 바람,

 

을 사랑하게 만들었다.

 

복잡한 서울에서 살고 싶었다.

 

 

그러나

서울로의 이사 가

그렇게도 이루기 어려운 건지,

 

통일만큼 어려운 건 아닌지,

 

남편의 전역을

몇 년 앞두고서야

우린 서울에서 살 수 있었다.

 

 

8화가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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