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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가족4화

 

 

나는 군인가족이었고

남편은 군인이었다.

 

1992년~2022년 동안

내가 군인가족으로 살았던

이야기를 적어본다.

 

부산에서의 생활은

항상 혼자 지냈다..로 요약된다.

 

친한 사모님도 없었고

남편도 365일 부대에 나갔다.

수영구 군인아파트는

연탄에서 기름보일러로 바꿔준다며

사람이 살고 있는 채로

공사가 진행됐다.

 

어수선했다.

아이와 나가있을 곳을 찾아 헤맸다.

 

난 이렇게 남편만 기다리며 살려고

 결혼을 한 건가..??

 

사기결혼이 아닌가

조심히 의심했다.

 

 

남편과 결혼했으나

혼자 사는 생활..

 

아이는 남편과 같이 낳았는데

혼자 키우는 생활..

 

남편과 아이와 같이 살고 있으나

혼자 사는 기분이 드는 생활..

 

나는 생산성 있게 알차게

보람되게 살지 못했다.

 

 

나는 피폐해져 갔다.

 

누가 밥이라도 해줬음 싶었다.

 혼자 밥 먹으러

식당 가는 것도 두려워

내일은 가보리라 매일 다짐만 했다.

 

밤낮이 바뀐 아이로 인해

나는 밤에 잠을 자질 못했다.

매일 집에서

우리 어린 큰아이와 나..

이렇게 살았다.

 

 도움도 관심도 주지 않는

친정엄마가 몹시 미웠다.

우리 엄마는 진짜엄마가 맞을까..

조심히 의심했다.

 

그러나

 엄마와 얼굴이 난 너무나 닮았다.

 

 

남편은 모든 것에

미안해했지만

남편은 내편도, 남의 편도 아닌

나라 편이었다.

 

싸울 시간조차 없으니

나는 미친것처럼

웃음만 나왔다.

 

 

집이 춥다 보니

아이가 감기에 걸릴까 걱정,

 

온수를 펑펑 쓰고 싶다는 소원,

 

남편을 버려버릴까 하는 상상,

 

이러다 난 죽을 것 같다는 망상,

 

그러나

부산은 너무나 살기 좋았다.

 

1년 반이 지나니

또 이사할 때가 왔다.

 

 

 충북 제천.

 

제천에서는

부대안 관사에 살았다.

 

8개 관사가

두 집씩 일렬로 있었고

부대장님 관사는

조금 떨어져 홀로 위치했다.

 

관사는

지어진 연식을 알 수 없었지만

지극히  낡음이 너무나 잘 보였다.

그러나

의외로 무너져지지 않고

다행히 비도 새지 않았다.

 

8개의 관사에서

소령 2, 대위 3,

중령 2분이 살고 계셨다.

 

 

제천은 부산과 달리

집이 외진 곳에 위치하다 보니

모든 것이 불편했다.

 

나는 운전면허가 없어

시장을 볼 때

사모님들 차를 얻어 탔다.

그게 매번 미안하고

눈치가 보였다.

 

괜한 자격지심이었다.

 

이 자격지심을 갖고

난 어리석은 일을 저질렀다.

 

 

아이를 업고 관사에서 

30분쯤 걸어 나와야 있는

버스정류소가 있었다.

 

그곳에서

얼마의 시간을 기다렸는지도

알지 못한 채

도착한 버스를 타고

나는 시장을 갔다.

 

97년도니까 지금이면

스마트폰으로

버스 시간을 알 수 있어

안 해도 되는 괜한 고생이었다.

 

장을 보고 나니

4시쯤

버스 막차가 4시 반이었다.

 

버스는 오질 않았다.

 

주변에 물으니

버스는 이미 간 거라고 했다.

 

 

택시를 탔다.

 

올 때 빈택시로 와야 한다며

택시비는

부르는 게 값이었다.

 

그렇게 큰돈은

처음 택시비로 내며

 관사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런데

택시에서 내릴 때

부대전체가 큰소리로 울렸다.

 

내가 세심하지 못해

내리면서

아이의 머리를

택시문에 찧고 말았던 거다.

아이는 머리에 혹이 났고

많이 울었다.

 

바로 떠난 택시를 쳐다보며

어찌해야 하나

난 판단이 안서

아이와 같이 울었다.

 

얼마지 않아

사모님 차를 얻어 타고 

병원을 갔다.

 

그 후로 

제천에서의 생활은 

운전면허를 따기 위한

나날들이었다.

 

 

군인가족에게

운전면허가 없다는 건 

유배지 생활과 비슷하다.

 

한마디로 갇히는 거다.

 

설사 면허증이 있다 해도,

 

시내 한복판에 산다 해도,

 

큰 도시로 가서 살고프다.

군인가족의 공통됨이다.

 

 

힘들다 느끼면 힘든 거다.

 

추억이 된다 하면 추억이다.

 

제천에서 의지하며 살았던 건

남편이고 싶었는데

역시 사모님들이었다.

 

친언니, 친구, 보호자가 돼주었다.

 

 

나도 도움이 되는 존재

군인가족이고 싶었다.

 

진정 상대를 위하는

말 한마디의 위력을 갖고 싶었다.

 

'어떻게 해야

도움이 되는 말이 할까'

이 답을 알기 위해서였을까..??

 

내 인생

담금질의 성지가 된

강원도 속초로 이사를 했다.

 

 

5화가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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