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군인가족이었고
남편은 군인이었다.
1992년~2022년동안
내가 군인가족으로 살았던
이야기를 적어본다.
대전에서 논산으로 이사했다.
논산은 안 좋은 기억이 많다.
사고도 많이 났고
남편과 많이 싸우기도 했다.
생각해 보면
부끄럽게도 내 환경들을
내 공부로 가져오지 못했다.
내 모순을 찾지 않고
불평불만과 남 탓으로 보낸
나날의 결과였다.
논산에서의 생활은
집 바로 앞에 위치한
사료공장의 너무 잘 돌아가는
소음으로 힘들었다.
군인아파트 뒤로 있는
양계장에서 나오는
똥냄새로 죽을 것 같았다.
놀라운 닭들의 탈출,
이런 환경들을
나는 냉철하게 비판하는 삶으로
점철됐다.
빨리 이사 가고 싶었다.
그러나
다음 이사 갈 곳에 관사가
너무 늦게 나와
거의 3년을 채우고 나서야
이사를 할 수 있었다.
그땐
빨리 논산을 떠나고만 싶었다.
논산이 싫어서가 아니라
나의 삶이 싫어서였다.
암흑기와 같았던 논산의 삶이었다.
내 삶에만 주목했던
이기적인 나의 시각이 문제였다.
나만 이 세상에서 가장
힘들다는 생각이 우선이었다.
그러나
다른 이들의 아픔과
어려움도 보게 하는 계기도 됐다.
그땐 몰랐다.
감사하지 않은 게 없는데
불평불만하는
내 어리석음이
더 힘들고 많은 어려움으로
스스로 기어들어가
나를 담금질하게 만들었다.
논산은 분명 힘들었지만
날 성장시켜 준 고마운 곳이다.
그러나
굳이 어려운 환경을 만나가며
성장한다는 건
옳고 좋은 방법은 아니다.
내가 고등학교 때
담임선생님이 그랬다.
"용돈 주고 뒷바라지해 주며
공부하라 할 때 공부 해라."
조건 좋을 때
난 공부 안 하고
농땡이를 친 건가 싶다.
나는 내 생활을 열심히
불평불만하며 사느라
그동안 내가 했던 노력들을
날려버린 것만 같았다..;;
아이들도 잦은 전학으로
적응하기 힘들어했다.
그럼에도
난 불평불만하느라 바빠
아이들에게 힘이 돼주지 못했다.
시간이 지난 후에야 잘못이 보였다.
내가 너무 잘못했다..
불평불만은
더 큰 어려움을 부른다는 걸
그때 알았다면
나의 젊음은 담담했을 것이다.
남 탓과 불평불만을 하라고
내게 준 환경이 아니었다.
그 안에 내 공부가 있어
공부 중임을 알아차리고
노력하라는 뜻이었다.
11화가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