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군인가족이었고
남편은 군인이었다.
1992년~2022년동안
내가 군인가족으로 살았던
이야기를 적어본다.
이렇게 또 이사를 했다.
경기도 김포시 사우동으로.
이사는 내게 없어서 안 될 존재다.
언젠가 남편이 전역하면
이사를 멈춰야 할 텐데
그땐 가만히 살 수 있을까 싶다.
그만큼
이사를 하며 사는 삶은
너무나 나와 잘 맞았다.
이사가 잘 맞는다는 건
방랑끼, 역마살이
난리 나서가 아니다.
전생이 김삿갓이었을 수도 있겠다.
생각해 보면
나는 제복 입은 사람을 좋아한다.
경비원, 구급대원 복장도 좋아한다.
제복을 이렇게나 좋아하다 보니
그에 따라오는
이사문제도
운명적으로 받아들이게 된 거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내가 제복을 입을걸 그랬다.
우리가 이사 간
김포 사우동에 위치한 아파트는
아파트를 몇 채 부대에서 구입해
대여한 곳이다.
부대에 따라 군인아파트는
수급이 원활한 곳도 있지만
대기를 해야 할 만큼
부족한 곳이 있다.
사는 환경이
좋은 곳에 위치하고
하자가 적어 살만한 아파트는
이사를 안 가려고들 한다.
아이의 전학을
최소화하려는 이유도 있다.
군인가족은
다 비슷한 마음이기에
각 부대에서도 배려해서
전에는 그냥 살게 해 줬는데
이젠 바뀌었다.
부대 전출 이후에도
3개월까지는 더 살게 해 준다.
그 이후부터는
보증금의 30%를
위약금으로 내야 가능하다.
위약금 30%는
더 사는 개월수만큼
계속 같이 오른다.
이 규칙이 생기고나서부터
아파트 수급이
많이 원활해졌다.
전임이 이사를 안가
대기를 하고
이사를 아예 못 들어가는
불편함이 적어진 것이다.
김포에서의 생활은
빕스에 꽂혀
거의 매일 출근을 했다.
연어와 샐러드, 망고,
내게 집중공략 돼 버렸다.
입에 맞다 보니
몸무게 최대치를 매주 경신하고
옷이 작아져갔다.
도박도 아닌데
빕스를 끊지 못했다.
그만 가자던 아이를 데리고
난 계속 다녔다.
그러나
달도 차면 기우는 법ㅋㅎ
과거의 난 죽었다.
빕스가 뭔가..?
지금은 외식도 안 한다.
요기오, 배민, 쿠팡이츠와 함께다.
배달음식은
나와 쭉 함께 동행할 거 같다ㅋㅎ
배달 때문에
난 이민 못 간다.
김포에서 1년 8개월을 살았다.
작년에 김포를 다시
찾아가 본 적이 있다.
김포 사우동 공설운동장에서
놀이용 미니오토바이를
대여해서
타던 곳이
이젠 없어져 있었다.
우리가 살 때보다
아파트도 더 많아졌고
길에 사람도 더 많았다.
과거의 시간은
머물러 있지 않다.
변치 않을 것 같던 생각들도
어느덧 바뀐다.
그대로일 것 같았던 거리도 변하고
그에 따라 나도 달라졌다.
이유는 간단하다.
불평불만과 함께해 보니
남는 것도, 도움 되는 것도
하나도 없다는 걸
이제야 안거다.
약간 많이 늦은 감이 있다.
짜증과 불만인 상황들을
공부자세로 가져와보니
그렇다고
짜증과 불만이 없어지진 않는다.
그러나
내가 느끼는 힘듬의 강도가
약해지고
그 자리에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게 됐다.
종교적 간증이나
참회, 속죄가 아니다.
이 놀라운 일을 느끼고선
이젠 불편불만과 남 탓을
그만하려
노력하게 됐다.
14화가 계속됩니다.